나의살던 고향은 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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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살던 고향은 초산군!
  • 공무원타임즈
  • 승인 2023.10.1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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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산군은 본도 중앙북부에 위치하여 압록강을 국경으로 중국 만주지방과 접해 있다.
처음에는 두목리라 불렸으나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주,이산으로 개칭되었다가 정조때 오늘의 초산(楚山)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6.25전쟁 당시 국군이 본군의 한.중 국경까지 진격하여 신도장에서 압록강 물을 떠다 이승만대통령에게 바쳤다고 해서 이름이 난 초산군은 그 지형이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산간지대인 탓으로 주민생활은 자작농 또는 중농계층이 많고 지주계급이 적었으므로 공산당의 악랄한 선동에도 불구하고 계층간의 갈등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1947년 9월 서울 중구 방산동 김승건씨댁에서 60여명의 군민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고 초대회장에 한봉규씨를 선출하였다. 초기 군민회 활동으로는 군민상호간의 연락과 생업 알선 등 동향인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였다.

이후 1948년 창경원에서 제2차 총회, 1949년 덕수궁에서 제3차 정기총회 겸 야유회를 열어 군민간의 화목한 모임으로 발전시켜 나갔으며 1956년 10월14일 덕수궁에서 약2백여명의 군민이 가족 동반하여 총회 겸 야유회를 가지며 오늘의 군민회로 육성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1983년 김봉건회장때부터 편찬에 착수해 오던 “초산군지”가 이임희회장 때에 이르러 발간을 보게 되어 고향의 참모습을 담은 향토지를 후대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1984년 4월 군민회 규약을 대의원 제도에 의하여 임원을 선출하도록 하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개정하였고 그해에 군내 10개면의 면민회를 조직하였다.

1984년 5월5일 제5회 도민의날 대회에서는 당당히 영예의 종합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자랑스럽고 단합된 초산군민의 모습을 유감없이 과시하였고 1987년 제8대 이임희회장이 일금 500만원을 희사하는 것을 계기로 기금이 마련되어 군민 숙원사업의 하나인 “초산장학회”를 설립하였다.
또 1977년에 시작한 일선장병 위문행사는 1980년에 정례화하여 본군의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초산부대를 매년 10월26일 방문하여 초산부대 장병의 노고를 위로하고 금일봉을 전달해 왔다.
이렇게 경로사상의 함양과 애향심으로 뭉쳐진 초산군은 군민 상호간의 화기애애한 친목을 국민총화의 지름길로 우리들의 염원인 통일의 기쁨을 앞당길 것으로 확신하며 후손에게도 이와 같은 사상을 깊이 심어줄 것이다.
현재 초산군은 박종식군민회장, 김담태명예군수, 이성진사무국장, 김성우장학회장이 군을 위해 애쓰고 있으며 이덕수중앙도민회부회장, 이성우중앙청년회장이 군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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