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담긴 6.25전쟁 이후 서울 개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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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담긴 6.25전쟁 이후 서울 개발상
  • 공무원타임즈
  • 승인 2011.03.0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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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박물관 '재건시대 서울 1957~1963' 사진전 개최

▲한강 동부이촌동 수해현장(1959). 서울역사박물관제공
서울시가 1957년부터 1963년까지 6.25전쟁 이후 본격적인 개발시대에 있었던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한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은 '서울시정사진특별전 - 재건시대 서울, 1957~1963'을
오는 3월 9일(수)부터 4월 24일(일)까지 개최한다.
전시개막은 2011. 3. 8(화) 15시,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갖는다.

서울시는 이번 전시가 2010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발간한
『서울시정사진총서1 - 폐허를 딛고 재건으로 1957~1963』에 대한 각계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이를 보다 많은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특별전으로 기획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이번에 전시하는 1957~1963년은 사회적으로 ‘베이비 붐’의 정점에 있었던 시기이며,
정치적으로 3․15 부정선거-4․19 혁명-5․16 군사정변으로 이어지는 격동기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오늘날 서울이 결정된 시기이기도 하며,
재건을 넘어 본격적인 개발의 시대를 잉태한 중요 시기로 볼 수 있다.

1957년부터 1963년 7년 동안 공식적으로 전재 복구사업이 종료됐지만,
여전히 곳곳에 전쟁의 상처가 잔존해 있었고, 주택․식량․생필품 등의 절대 부족과
질병․화재․침수 등 재난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또한 이 시기는 ‘베이비 붐(1955년에서 1964년 사이에 전국 약 900만 명 출생)’
이 절정에 달한 시기로, 지방 인구의 지속적인 유입과 함께 서울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시기이다.
1957년 서울인구는 약 160만 명으로 전쟁 이전의 수준을 회복했고,
1963년에는 320만 명으로 2배나 늘어났으며,
행정구역 또한 1949년 268.35㎢에서 1963년 613.04㎢로 2.3배 늘어나 지금의 서울 모습이 갖춰졌다.

한편,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전쟁 이후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독재와 권위주의를 강화했다.
그 결과 대통령 생일 경축행사와 서울역 네온사인,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회관’의 건설 등과 같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우상화사업이 시행됐다. 이러한 극단적 권위주의는 결국 집권연장을 위한
대규모 부정선거(1960년 3․15 부정선거)로 연결됐고, 결국 이것은 시민저항(4․19 혁명)을 불러와
자유당 정권의 종말을 가져왔다.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이 집권한 제2공화국이 시작됐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의 무능과 내부갈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요구와 사회적 활동은
국민들에게 사회적 혼란으로 인식됐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은 경제개발과
사회 안정을 명분으로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5․16 군사정부는 사회 안정과 경제개발이라는 기치 아래 강력한 사회적 통제와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했다.
이로써 4․19 시민혁명으로 어렵게 맞이한 민주주의는 다시 후퇴하게 됐다.
한 마디로 1957년부터 1963년 동안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재건시대' 였다. 전후 열악한 경제 여건 속에서도 주택과 도로 건설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청계천이 복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 동안 일어난 정치적 격변과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이후 서울의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주도하는 ‘개발시대’를 예고했다.

이번 전시는 3월 8일 개막행사를 갖고, 일반인 관람은 3월 9일부터 실시된다.
관람시간은 평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며, 토․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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